지금의 나는 젊은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
청년 세대에 속하지도 않고, 노년 세대에 속하지도 않은 중간 세대인 것 같다.
굳이 조금 더 들어가자면, 청년 세대는 벗어났지만, 장년 세대의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다.
사실 중간이라는 말도 꽤나 애매한 단어이다.
주관적 의미가 다분이 들어간 단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장년/노년을 숫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이다.
스스로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세대로 생각된다.
청년일 때의 나는 총명했다. 민첩했다. 체력도 좋고 기억력도 좋았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청년기가 지나면서, 그 때의 상태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대학생 때, 신입사원일 때, 그때는 몰랐었다.
그때의 찬란했던 순간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될 줄만 알았다.
그 시절의 나는 다수의 장년기에 들어선 분들이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그게 자연이었고, 당연한 이치였다.
나의 청년기가 지나가면서,
나 스스로가 느껴질 만큼 신체 기능 및 두뇌 기능의 저하가 발생했고, 이는 진행 중이다.
서서히 발생하는 신체 기능의 변화, 두뇌 기능의 변화가 낯설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지나가는 청년기가 너무 빠르게 도망가지 않도록, 속으로 바라고 또 바라면서 몸부림친다.
나의 몸에 세월을 담으면서, 그때 그분들이 어떠셨는지 조금씩 공감이 간다.
이제야 내가 직접 겪게 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이해한다고 아는 것이 아닌, 경험해보니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노년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내가 그만큼의 긴 세월을 이겨내고 나서야 가능할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사회속에서
젊은 세대를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동년 세대를 보면서 자신을 비추어보며,
나이든 세대를 보면서 미래를 그린다.
사회적 인구구조 속에서 기준이 되는 나 자신이 다른 것이다.
과거의 나는 청년세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장년세대의 삶을 살고 있으며,
미래의 나는 노년세대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이듦에 따라 나의 중심축은 서서히 이동하며, 내가 보는 상황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다.
세월이 누적되면서, 스스로에게 인생이 쌓이면서 식견이 넓어지고 지혜가 쌓이게 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알지 못했듯,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알기는 힘들 것 같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되짚어볼 수 있지만,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상상할 뿐이다.
미래의 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질 것이다.
세월이 지나, 나 자신에 변화가 생긴다면,
부디 의미있는 변화이길 바래본다.
부디 긍정적인 변화이길 바래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현재로 되돌아온다.
오늘 하루, 현재를 의미있게 살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자.
비록 그것이 매우 느리게 보이고, 매우 희미하게 느껴질지라도,
한달, 일년, 그리고 십년이 쌓인다면 결코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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