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TV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여러번 새어 나왔죠.
사실 요즘 제 마음을 다른 측면에서 무겁게 짓누르는 건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있고, 이제 선배와 후배로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신입사원입니다.
제가 있는 곳은 뭐랄까,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이나 성장에 대한 의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입니다. 하루하루 터지는 문제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하고, 변화보다는 현재를 유지하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는 그런 답답한 울타리죠. 그런데 이런 곳에 1년 전 아주 파릇파릇한 신입사원이 들어왔습니다.
경력 차이만 따져도 저와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사수가 되고 그 친구가 부사수가 되어, 맨투맨으로 일을 가르치게 되었죠. 우리 회사는 당장 처리해야 할 실무가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계속 쌓여 있는 상황입니다. 일을 처리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제 몫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더군요.
이제 곧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상하게도 성장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딥니다. 가끔 보면 머릿속이 엉켜서 헛도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기초적인 실수를 반복하거나, 하나를 가르쳐주면 딱 그것만 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해 헤매는 모습을 여러번 보여주고 있어요. 그럴 때면 가슴 한구석이 턱 막혀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 친구는 아직 사회생활이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판의 깊이와 넓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일의 앞뒤맥락이 무엇인지 보기보다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소박하고 단순한 차원에서만 회사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지난 10년 넘는 세월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쌓아온 그 치열한 경험과 경력들을 단숨에 압축해서 전달해 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도요. 내가 일을 가르쳐주는 이상 어떻게든 이 친구가 직장인으로서 제대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게 선배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그 신입사원은 스스로의 성장이나 자기 발전보다는, 지금의 안락함과 편안함에 더 신경을 쓰는 듯 보입니다. 더 깊이 고민하려 하지 않고, 딱 적당한 선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이거든요. 이러한 태도를 느낄 때마다 저는 허탈함이 몰려옵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제 위치입니다. 위에서는 "신입 교육 제대로 시키고 있는 거 맞냐, 실무 성과 언제 나오냐"며 은근히 압박을 주고, 아래에서는 여전히 손길이 필요한 멍한 신입이 있습니다. 위에서는 짓눌리고 아래에서는 쳐받쳐지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허리의 서글픔이죠.
어쩌면 회사의 찌든 분위기가 그 친구의 의욕마저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그 친구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일 수도 있겠죠.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막상 당장 이번주에 넘겨야 할 문서와 할일목록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다시 노랗게 물듭니다.
오늘도 저는 신입이 던져준 문서를 리뷰하고 있습니다. 위아래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저의 처지가 씁쓸하기도 하고, 안락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 친구를 과연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솔직한 두려움도 스쳐 지나갑니다. 이 답답한 울타리 속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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